한·EU FTA, 뚜껑 열어보니 '배신'... 車·식품 빼곤 "내릴 계획 없다"
"이 기회에 이름값" 일부 명품, 가격 인상 '배짱'
중국서 생산하는 유럽 가전 스위스 발송 시계·보석 등 FTA 전혀 해당 안돼… 섬유값 오른 의류업계 관세 좀 내려도 값은 그대로
한·EU FTA(자유무역협정)가 공식 발효됐다. 자동차를 비롯해 의류·보석·와인 등 다양한 소비재의 관세가 철폐되면서 국내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값싸게 제품을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랐다. 자동차와 와인 등 소수 품목을 제외하면 소비자가 실제로 가격 인하 혜택을 보는 제품은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유럽 현지 분위기도 차분하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 등 대기업 현지 법인들은 FTA가 발효된다고 해서 당장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다는 반응들이다. 왜 이럴까.
EU 지역 브랜드라 해도, FTA가 효력을 미치지 못하는 분야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명품 브랜드는 FTA를 앞두고 가격을 올리기까지 했다. 소비자들은 배신당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①오히려 가격 올리기 '배짱 장사'
업계에 따르면 명품 브랜드 프라다와 미우미우는 하반기 국내 제품 판매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루이비통은 FTA 발효 1주일을 남겨둔 지난 24일 평균 5% 가격을 올렸다. FTA 내용대로라면 유럽산 의류·신발·가죽제품 등은 관세 8~13%를 즉시 철폐하거나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 업체들은 가격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올렸다. 관세 인하로 얻는 이익은 이익대로 고스란히 가져가고, 가격을 추가 인상해 소비자들로부터도 더 많은 돈을 받겠다는 것이다.
한 명품 브랜드 관계자는 "지금 명품이 너무나 대중화돼서 본사에선 이미지 하락을 걱정하고 있다"며 "최근 본사 방침을 보면 고가 제품을 강화해 '명품다움'을 되찾자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가격을 올려 '너도나도' 드는 가방 이미지에서 벗어나겠다는 설명이다. 말이 좋아 '품격 강화'이지 '배짱 장사'인 셈이다
②OEM(제조자 주문 방식)으로 생산하는 제품도 관세 혜택에서 제외
8% 관세 폐지가 예상되는 소형 가전 부문은 대부분 현행 가격을 인하하지 않을 방침이다. 국내 시장에 다리미·면도기·조명기구 등을 수입 판매하는 네덜란드 가전업체 필립스의 이상구 필립스코리아 상무는 "조명기구·주방용품·AV 제품 등 대부분의 제품은 필립스 브랜드를 달고는 있지만 중국에서 생산한다"며 "고급 면도기 등 극히 일부 제품만 유럽에서 들여온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제품이 EU로 나가는 경우도 비슷하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휴대전화와 백색가전 제품의 경우 해외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삼성전자 구주지역총괄 김석필 전무는 "판매 제품이 대부분 중국, 동남아, 동유럽 등 해외 공장에서 들여오는 것이라 FTA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③제조뿐만 아니라 최종 선적도 EU 지역에서 해야 혜택
구찌·입생로랑·보테가 베네타 등이 속해 있는 PPR그룹의 경우 생산은 이탈리아에서 하지만 물건 선적을 스위스에서 한다는 이유로 FTA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스위스는 유럽에 있지만 EU 국가는 아니다. 프라다와 버버리는 홍콩을 경유해 수입하는 것이라 역시 FTA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오메가 등 명품 시계와 불가리 같은 보석 브랜드도 스위스에서 제조하거나 선적해 혜택이 없다. 수입 가구 중 국내에서 인기 높은 소파와 침대는 이미 관세가 없어 추가 혜택은 없다.
④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관세 인하분 상쇄
독일 고급 가전업체 밀레의 안규문 밀레코리아 사장은 "원자재 가격 인상을 감안하면 현재 가격을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독일 주방용품 휘슬러 측도 "스테인리스 가격이 많이 올라서 관세 철폐분을 가격 인하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의류 역시 올 초 섬유 가격 상승으로 원가가 8~10% 올랐기 때문에 수입 원가에 붙는 관세가 조금 내린다 한들 판매가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소비자시민모임 김자혜 사무총장은 "수입업체들의 막무가내식 가격 정책에 휘둘리다보니 소비자 후생에 하등 도움이 안되고 있다"며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가격 인하분도 확실하게 발표해 소비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EU FTA, 뚜껑 열어보니 '배신'... 車·식품 빼곤 "내릴 계획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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