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4일 일요일

시계의 역사, 실패와 재기의 교훈 - the complete history of Watch making

 

 

 

 시계의 역사, 실패와 재기의 교훈 - the complete history of Watch making

알프레드 까르띠에와 그의 세 아들. 왼쪽부터 피에르, 루이 그리고 자크 까르띠에(1922년).

“전통으로, 혁신으로, 당대의 유행으로” 까르띠에(Cartier, 1847~)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자신의 스승이자 보석 세공자인 아돌프 피카르드로부터 보석 사업을 인수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고, 1847년 당시 프랑스는 아프리카 북서부의 알제리아를 정복한 덕분에 매년 축제 분위기였다. 마스터급 주얼러인 아돌프의 도제로 폭넓은 보석 제조술을 연마해온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당시 파리가 원하는 보석 장신구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실물과 똑같은 형태를 재현하는 카메오(cameo) 인그레이빙 기술을 바탕으로 섬세한 세공력을 보여주는 보석은 특히 귀부인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의 아들 루이 프랑수아 알프레드는 1874년부터 손목시계와 클락을 제조하며 아버지의 보석상 일을 도왔다. 그는 귀족의 손목에 화려하게 안착할 체인 손목시계를 제조하는 일에 열의가 대단했다. 1888년 3개의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여성용 손목시계가 까르띠에 보석상 쇼윈도를 장식했다. 두 번째 손목시계는 12년이 지난 뒤에나 선보일 수 있었다. 제작 속도도 문제였지만, 주인을 찾는 시간 역시 더뎠다. 주인을 만나는 데 7년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성공의 신은 까르띠에의 편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긴 소매 드레스가 점차 사라지고 손목을 드러내는 슬리브리스 드레스가 붐을 이뤘다. 긴 드레스 장갑을 끼는 것 역시 철 지난 유행이었다. 여성들은 글로브 없이 우아하게 연출할 수 있는 방편으로 주얼 손목시계를 착용했고, 파리의 보석상은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 성공의 기류에 편승해 1898년 당대 파리 최고의 패션 가문의 후계자였던 앙드레 캐롤린 워스와 알프레드의 아들인 루이 까르띠에가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까르띠에는 본격적인 로열 소사이어티에 입성해 진정한 로열 패밀리의 고급문화와 우아함을 보석에 정착시켰다.

1 뤼 드 라페 13번지의 까르띠에 주얼리 살롱을 재현한 스케치(약 1910년으로 추정). 2 매혹의 까르띠에 컬렉션(Sortilege de Cartier Collection)은 당대의 여신으로 모니카 벨루치를 꼽았다. 3 8 데이즈 파워 리저브의 인하우스 그랑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가 장작된 로통드 까르띠에 그랑 컴플리케이션 스켈레톤 워치. 30피스 한정판으로 생산되었다. 4 1915년 제조된 산토스 손목시계. 광택이 우아한 8개의 스크루로 고정한 18K 옐로 골드 베젤과 카보숑 장식의 크라운이 현재 산토스 워치가 계승한 부분이다. 이 밖에도 로만 인덱스, 기찻길의 형태를 도입한 레일로드 분 트랙이 클래식한 정취를 머금고 있다. 당시 모델은 예거 르쿨트르의 무브먼트를 장착했다. 5 까르띠에의 시계 제조 기술력이 응축된 스위스 라쇼드퐁의 매뉴팩처 전경. 2005년부터 인하우스 무브먼트 제작을 목표로 3만㎡의 부지 위에 세워진 이 거대한 매뉴팩처 안에는 평균적으로 총 1백75개 분야의 정밀한 시계 제조 과정이 테크니션들에 의해 매일 이루어진다.

워치 메이커로 유명한 에드몬드 예거(예거 르쿨트르의 창시자)의 기술력이 까르띠에의 명성과 조우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 둘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동 무브먼트(zero-one-zero)를 장착한 여성용 브레이슬릿 워치를 까르띠에의 이름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배가 볼록한 토노형 케이스 시계를 개발하기도 했고, 카보숑 컷으로 화려한 빛을 발하는 크라운도 제조해냈다. 이 화려한 전성기에 루이 까르띠에는 쾌활한 성격의 플레이보이, 알베르토 산토스 듀몽과 친분을 쌓게 된다. 브라질 태생의 산토스 듀몽은 모험가 취향의 취미 생활을 즐겼는데, 그중 하나가 열기구나 비행기를 제조하거나 조종하며 여행을 즐기는 일이었다. 1906년 11월 12일, 횡단 비행 기록에 도전하는 그를 위해 루이 까르띠에가 선물한 것이 최초의 남성용 손목시계로 알려져 있다. 바로 ‘산토스’ 워치다. 1911년 공식적으로 출시된 산토스는 회중시계 일색이던 남성 시계에 큰 변혁을 일으켰다. 산토스의 출현으로 비로소 시계의 맥박과 남자의 맥박이 그 거리를 좁혔고, 이는 회중시계를 보관하던 수트의 포켓에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루이 까르띠에의 창조력은 마이더스의 능력에 가까웠다. 거북이 등을 모티브로 한 토르투(Tortue)와 둥근 욕조 모양에서 영감을 받은 베누아(Baignoire) 모두 까르띠에의 화려한 서막을 장식했다. 전시 중이었음에도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해방되는 그 순간을 기념할 시계를 만들 궁리를 하던 루이 까르띠에는 1916년 9월 15일, 솜(Somme)강 전투에서 영국군이 적진을 향해 몰던 최초의 탱크에서 영감을 받아 결국 탱크 워치를 완성했다. 1933년 마라케시 왕국 파샤 왕자의 주문에 맞춰 방수 기능을 적용한 최초의 파샤 워치를 왕가에 헌정했다. 이처럼 전 세계를 여행하며 당대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석과 시계에 두루 반영해낸 루이 까르띠에는 1942년 7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까르띠에가 진정한 워치 메이커로서 성장한 것은 1976년, 레머스트 드 까르띠에 컬렉션을 출시하면서부터다. 2년 후 골드와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의 산토스 워치를 선보였고, 1985년 파샤 워치가 그 뒤를 이으며 까르띠에는 그동안 제조되었던 시계 모델을 연대순으로 다시 세상에 선보였다. 과거의 유산 안에 가야 할 미래가 존재함을 일찍이 깨우쳤던 것이다. 이처럼 까르띠에는 묵묵히 시간의 영속성(timeless)을 몸소 보여주었다. 현재 까르띠에는 뛰어난 기계식 시계 제조 기술로 크로노그래프를 비롯해 투르비용, 애뉴얼 캘린더 그리고 미니트 리피트 등 복잡한 기능을 탑재하며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의 반열에 올라섰다. 근현대사를 같이하며 최고의 워치 메이커로 우뚝 서기까지 까르띠에는 그 유산을 심장 밑으로 내려놓은 일이 없다. 까르띠에가 왕의 보석상, 보석상 중의 왕인 명백한 이유 중 하나다.

 

1, 2 피아제의 라코토페 매뉴팩처 변천사. 3 오팔 다이얼의 신비로운 색채가 일품인 1970년대 빈티지 워치. 미세한 링크가 통합되면서 다채로운 아르데코 장식을 표현한 브레이슬릿은 오팔의 화려한 색채와 조화를 이루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4 2010년에 선보인 피아제 알티플라노 핑크 골드. 4시 방향에 스몰 세컨즈를 배치해 셔츠 소매에 가려지는, 드레스 워치의 기능을 강조한 남성 손목시계다. 5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하드 스톤 다이얼과 옐로 골드의 독특한 텍스처로 완성된 아방가르드한 커프 워치. 1980년대.

“가능한 한 더 잘하라. 그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피아제(Piaget, 1874~)
조르주 피아제는 자신의 농장이 있는 작고 아름다운 산기슭에서 정밀하면서도 장인적 기품이 살아 있는 포켓 워치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쥐라 산맥에 자리한 라코토페(La Côte-aux-Fées)는 요정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봄이면 천지가 튤립으로 뒤덮이는 아름다운 산골이다. 조르주 피아제가 평화로운 이 언덕에서 만든 포켓 워치의 명성은 뇌샤텔 지역까지 알려졌다. 1911년 조르주 피아제의 아들, 티모시 피아제는 가업을 매뉴팩처로 확장하며 손목시계를 제조하기 시작했고, 그다음 세대로 이어진 피아제 매뉴팩처는 조르주 피아제의 손자인 제랄드 피아제와 발렌틴 피아제 시대에 최고의 성장기를 맞이한다. 1957년 두께가 2mm에 불과한 무브먼트가 개발된 것이다. 바로 칼리버 9P. 수동 무브먼트인 9P의 출시는 당시 울트라 신 무브먼트 개발에 한창 열을 올리던 스위스 시계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어 1960년에는 오토매틱 무브먼트로 울트라 신을 확장한 12P를 출시했는데, 이 칼리버의 두께는 2.3mm에 달했다. 초박형 무브먼트 제작을 위해서는 모든 부품이 초박형이어야 함은 물론이고 얇은 부품들이 연동하며 충격을 견디게 하는 제조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얇은 무브먼트 조립, 금과 은, 플래티넘과 같이 귀한 금속만으로 시계를 완성한다는 고집,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대한 우아한 시계를 만들어낸다는 피아제의 철학은 울트라 신 워치 외에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폴로 워치의 창창한 계보, 하이 주얼 워치의 화려함 또는 절제와 독창성으로 이어졌다. 1970년, 쿼츠 시계의 압도적인 양산으로 스위스 기계식 시계는 총체적인 위기를 맞이했다. 피아제는 당시 더욱 화려하고 진귀한 스톤으로 다이얼을 완성한 쿼츠식 시계를 제조하며 이 위기를 무난하게 넘겼다. 당시 재키 케네디와 지나 롤로브리지다, 앤디 워홀까지 피아제의 예술적 가치를 탐미한 유명인들이 피아제의 익셉셔널 피스를 착용했고, 피아제는 달리의 자유로움을 담은 아트피스를 시계에 접목하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록펠러와 같은 대자본가가 뉴욕의 현대미술 주류를 지배하던 1970년대, 오닉스와 타이거 아이, 아름다운 청록색 터키석과 군청색의 청금석 등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다양한 컬러의 스톤으로 완성된 엘로 골드의 쿼츠 시계들은 예술가들의 눈에 먼저 띄었다. 1988년 피아제는 방돔 그룹, 지금의 리치몬트 그룹에 입성했다. 이후 포제션을 비롯한 타나그라, 라임라이트, 미스 프로토콜과 같은 하이 주얼 워치를 비롯해 알티 플라노와 엠페라도를 비롯한 블랙 타이 컬렉션의 남성 시계를 진보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전통적 라인의 계보를 따라 다양한 기능을 탑재하며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도 제조해 거대한 워치 메이커로서 풀 라인업을 형성했다. 현재 라코토페와 플랑레와트에 심장을 둔 피아제 매뉴팩처는 무브먼트 개발을 인하우스로 완성하는 워치 메이커 중 고도의 기술력을 갖추고 탄탄한 연식과 전통을 기반으로 한 몇 안 되는 워치 메이커라 할 수 있다. 이는 “가능한 한 더 잘하라, 그것은 언제나 가능하다”는 말을 남긴 조르주 피아제의 공명과 함께 남아 있다.

1 2004년 재현된 화이트 래커 다이얼과 화이트 골드 케이스의 PA49 워치. 2 에스텔 아펠과 남매인 루이 아펠은 1911년 반클리프 아펠의 가업 비즈니스에 합류했다. 루이는 그의 아내 헬레네와 당대 최고의 우아한 커플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루반 워치를 손목에 찬 루이 아펠의 모습. 3 붉은색 모로코 가죽의 파우치에 장착된 셔터 워치. 양쪽의 피봇을 돌리면 셔터가 열리듯 다이얼이 모습을 드러낸다. 당시 우아한 여성들의 여행용 파우치에 사용되었다(1931년). 4 2011년 출시된 반클리프 아펠의 엑스트라오디너리 다이얼 컬렉션. 소설 <기구를 타고 5주일> 속 남아프리카 대륙 여행을 에나멜링과 젬 세팅으로 다이얼에 옮겨놓은 마스터피스다. 5 옐로 골드 케이스의 슬라이딩 워치 컬렉션.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여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꿈을 꾸는 자 배후에 성실한 자, 쿠튀르 워치가 가능한 세상” 반클리프 아펠 (Van Cleef & Arpels, 1906~)
반클리프 아펠은 에스텔 아펠과 알프레드 반클리프의 결혼으로 시작되었다. 에스텔은 다이아몬드 상인의 딸이었고, 알프레드는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보석 세공사였다. 에스텔의 오빠인 찰스 아펠과 알프레드 반클리프는 두 가문의 명예를 영원히 유지할 묘책을 강구했다. 그리고 1906년, 파리 방돔광장 22번지에 반클리프 아펠의 최초 부티크를 열었다. 초기에 제조된 시계는 대부분 주얼 피스로 우아함을 추구했다. 우아한 신사와 귀부인은 시간을 말해주는 방식조차 우아하기를 원했다. 1934년 제조된 미노디에르(Minaudiere)는 립스틱이나 손수건, 퍼프와 열쇠 등을 소지할 수 있도록 개발된 보석함으로 오늘날 파우치와 같이 외출 시 이용했다. 당시 철도업계 거물의 부인인 플로렌스 제이 굴드(Florence Jay Gould)의 주문을 받아 완성한 것으로, 출시 이후 귀부인들의 요청이 쇄도했으며, 손잡이 끝 부분에 부착된 시계는 개폐 방식의 다이얼을 달아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시계를 보호했다. 아르데코 문양에 사용된 보석은 오닉스, 사파이어, 루비 등 경계가 없었고, 보석 사이에 틈이 없이 세팅하는 기법인 미스터리 세팅을 접목한 것도 있었다. 이 미스터리 세팅은 오랜 시간 반클리프 아펠의 보석 제품에 사용되어오다가 1990년 특허를 획득하기도 했다. 주문 제작의 보석과 브레이슬릿 워치로 우아함의 극치를 이루던 1938년, 알프레드 반클리프가 생애를 마감했다. 그의 딸 르네 레이첼 퓌상을 비롯한 2세대들은 1942년 미국 이민을 떠났고, 뉴욕 5번가에 첫 부티크를 열었다. 이로부터 1999년 리치몬트 그룹에 입성하기까지 반클리프 아펠은 줄곧 가문의 후손들이 경영했다. 반클리프 아펠이 최초로 가죽 스트랩의 손목시계를 출시한 것은 1923년의 일이다. 그러나 당시 귀족들은 반클리프 아펠이 진귀한 보석으로 화려한 아르데코 문양이나 자연을 형상화한 브레이슬릿 워치를 제조해주길 바랐다. 1949년 제작된 반클리프 아펠의 PA49는 1944년 가업에 동참한 피에르 아펠이 탄생시킨 남성용 드레스 워치다. 라커드 다이얼에 연약한 듯 섬세한 블랙 라인의 인덱스와 핸즈가 묘하게 교차하는 이 드레스 워치는 순전히 파티를 즐기는 자리에서 턱시도에 어울릴 시계를 갖고 싶어 제조한 모델이다. 향후 이 시계는 큰 반향을 일으켜 많은 남성들에게 크게 어필했으며, 2004년 반클리프 아펠은 PA49를 부활시키기도 했다. 반클리프 아펠은 창조에 뛰어난 프렌치 감각을 발휘했다. 네오리얼리즘의 대가인 영화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는 자신의 영화 <워먼 타임즈 세븐 Woman times seven> (1967)을 제작하며 영화 <클레오파트라>의 의상을 담당해 일약 스타일링의 거장으로 떠오른 루이스 알렉산드르 레이몬(Louis Alexandre Raimon)의 솜씨를 빌렸다. 비토리오는 영화에서 당시 가장 매혹적인 파리지엔의 스타일을 리얼하게 완성해야만 했다. 루이스는 여배우들의 옷장을 펜디와 피에르 가르댕으로 가득 채웠으며, 그녀들의 목과 손목을 반클리프 아펠의 보석과 시계로 장식했다. 반클리프 아펠의 상상력과 판타지는 아름다움을 원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빠져들 만한 세계였다. 21세기 들어서 출시된 반클리프 아펠의 기계식 시계는 상식을 뛰어넘어 형이상학적인 면이 있다. 레트로그레이드 기능을 수행하도록 지령을 받은 요정이 시간을 알려주고, 진귀한 돌과 자개로 거대한 자연을 재현한 시계를 제조한다. 이는 꿈꾸는 자와 성실한 자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세계다. 1백여 년 동안 오직 최고의 고급 시계를 제조해온 가문은 모든 것이 진보된 현재에도 오직 그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1 2011년 출시된 포르토피노.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에 데이트 윈도, 바 인덱스와 로만 인덱스를 믹스해 현대적인 세련미를 강조했다. 2 우아한 인그레이빙과 최초 디지털 연도 표시창을 선보인 IWC의 컴플리케이션 워치. 3, 4 샤프하우젠에 위치한 IWC 매뉴팩처의 어제와 오늘. 5 2011년 출시되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포르토피노 크로노그래프. 빈티지 무드의 푸시 버튼과 심플한 서브 다이얼의 배치가 네오 클래식을 추구하는 남성들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고도(Godot)를 기다렸고, 결국 고도를 만났다” IWC(International Watch Company, 1868~)
누구라도 파일럿 워치 하면 IWC의 마크 컬렉션을 언급할 정도로 현재 IWC는 시계 시장의 핵심적 위치에 있다. 이는 그리 순탄하지만 않았던 IWC의 1백50여 년 역사와 위기를 덤덤하게 이겨낸 철학이 배후에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868년 인터내셔널 워치 컴퍼니(IWC)라는 미국식 이름의 레이블로 시계 제조를 시작한 인물은 플로렌틴 A. 존스. 그의 조상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이주, 매사추세츠 주의 플리머스에 식민지를 개척한 영국의 청도교파인 필그림 파더스 중 한 명이었다. 이주민 1백2명 중 플로렌틴 존스의 조상은 시계 수리공이었다. 당시 이주민들이 모두 그랬듯, 개척 정신이 투철했으며 플로렌틴 역시 자신의 가문이 정착한 뉴햄프셔의 화이트 산맥에서 시계 제조업을 시작했고, 14세의 나이에 보스턴으로 도메인을 옮겨 워치 메이커로 활동하던 중 1869년 돌연 스위스 샤프하우젠으로 업장을 옮겼다. 귀족들을 상대로 쿠튀르 워치 제조가 성행하던 당시, 플로렌틴 존스는 다른 시계와 달리 좀 더 저렴하고 실용적인 시계를 제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싶어 했다. 덕분에 제조 공정은 산업화되었고, 손으로만 시계를 만들던 스위스의 다른 워치 메이커들과 상당한 차별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라인강 주변으로 분포해 있던 은행가에서는 이런 취지의 사업에 투자하려 하지 않았고, 1879년, 결국 플로렌틴의 시계 제조 공장은 폐업 위기에 처했다. 당시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주류가 유럽을 강타했다. 전기식 기계로 제품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기술력만이 주가를 올릴 수 있었고, 기계를 유입해야 하는 공장은 그 규모가 거대해졌다. 공장 소유주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플로렌틴의 IWC 역시 28만 스위스프랑이라는 금액에 라우첸버그라는 공장 소유로 매각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IWC의 가치에 비해 반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그로부터 1백여 년간 IWC는 가문이 대를 이어 경영하는 체제를 유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IWC는 괴링의 최강 독일 공군 전투기 부대인 루프트바페(Luftwaffe)에 파일럿 워치, 마크 11을 제공하기도 했다. 소프트 링을 케이스 안에 장착해 안티 마크네틱 기능을 선보인 마크 11은 현재 대표적인 컬트 워치로 수집가들 사이에 수천 유로에 육박하는 가격 차이를 보이며 거래되고 있는 희귀 모델이 되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 공군의 폭탄을 맞아 샤프하우젠 공장은 폐허가 되기도 했다(차후 공식적으로 폭탄은 오발이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IWC는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 배터리 시장이 세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금값이 오르는 현실은 마침내 가격이 저렴한 쿼츠 시계 시장의 선점을 예고하고 있었다. 당시 IWC의 시계 제조 공정을 총괄하던 오토 헬러(Otto Heller)는 최고가의 회중시계 제작을 선포했다. 동시에 페르디난드 A. 포르쉐와 긴밀한 협조를 이루며 모던한 손목시계와 케이스 디자인을 개척해냈다. 지금의 벤처 정신과 다를 바 없었다. 결국 스위스은행협회로부터 자본을 유입하는 데 성공했고, 군터 블럼라인(Gunter Blumlein)이 새로운 총괄 디렉터로 기용되면서 공격적인 제조 기술력과 광고 캠페인 전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0년, 그는 예거 르쿨트르와 랑게 운트 죄네를 비롯해 IWC로 보유하던 자신의 총 지분을 리치몬트 그룹에 매각했다. 당시 금액은 28억 스위스프랑이었다. 온갖 거친 풍랑을 만나면서도 IWC는 그 본업에 충실해왔다. 범용 무브먼트인 ETA의 무브먼트 개발에 참여했고 각종 하이엔드 워치를 탄생시켰다. 엔지니어, 포르투기즈, 포르토피노 컬렉션을 비롯해 퍼페추얼 캘린더의 복잡한 기능을 탑재한 다 빈치 등 남자들의 로망으로 남을 풀 라인업을 갖춘 최고의 매뉴팩처로 거듭났다. 또 38.2mm의 메가 오토매틱 무브먼트의 출시는 손목시계의 케이스 지름의 판도를 바꿔놓는 트렌드의 핵심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IWC의 역사는 많은 것을 알려준다. “낮은 곳에서도 본업을 잊지 마라. 우린 늘 고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내야만 한다” 정도의 교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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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3일 토요일

명품시계 위블로, 페라리와 만났다

 명품시계 위블로, 페라리와 만났다

 

 

억2000만원 짜리…전세계 20개 한정


고급 자동차와 명품 시계는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다. ‘공학 기술의 정수’이자 ‘성공한 남성의 장난감’이란 점에서 그렇다. 일반 서민이 범접하기 힘든
비싼 가격도 공통점이다. 고급 자동차와 명품 시계의 타깃 고객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이유다.

명품 시계 업체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점을
간파, 럭셔리 자동차 메이커들과 짝을 짓고 한정판 모델을 선보여왔다. ‘브라이틀링-벤틀리’ ‘파르미지아니-부가티’
커플 등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번에는 럭셔리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페라리와 명품 시계 업계의 ‘떠오르는 별’로 꼽히는 위블로가
만났다. 주인공은 지난 29일 저녁 서울 광장동 W호텔에서 선보인 ‘페라리 비거 뱅 투르비옹’(사진). 페라리의 중국 진출 20주년을 기념해
만든 시계로, 21일 중국에서 처음 소개된 직후 한국을 찾았다.

페라리 공식 수입업체인 FMK 관계자는 “페라리는 기술력이나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는 업체와는 협업하지 않는다”며 “위블로는 페라리 못지 않은 명성을 시계 업계에서 쌓은 데다 스포티한 디자인이 페라리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손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에 태어난 위블로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단번에 최고급
명품 시계 반열에 오른 브랜드다. 칼 구스타브 스웨덴 국왕, 가수 엘튼 존,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이 착용하면서 유명세를 타다가
2008년 세계 최대 명품그룹인 프랑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에 인수됐다.

이번에 선보인 페라리 비거 뱅
투르비옹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지름 44㎜짜리 시계판 안에 투르비옹(중력으로 인한 오차를 줄여주는 장치), 크로노그래프(시간·속도·거리 등을 측정하는 장치) 등 고급 기능을 넣은 게 특징이다. 2시
방향에는 페라리를 상징하는 ‘야생마’ 로고를, 8시 방향에는 위블로의 ‘H’ 로고를 담았다.

탄소섬유 티타늄 고무 등
다양한 신소재를 베젤(테두리), 스트랩(시계줄) 등 시계 곳곳에 적용하는 등 새로움에 도전하는 위블로 특유의 ‘개척 정신’을 담았다. 건전지를
쓰지 않는 기계식 시계이지만 태엽을 감을 필요는 없다. 손목에 차고 다니면 진자가 자연스럽게 흔들리면서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정판으로 딱 20개만 만들었다. 가격은
3억2000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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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6일 일요일

[SIHH 2012] 그뢰벨 포시 GMT

 [SIHH 2012] 그뢰벨 포시 G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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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비용의 끝을 제작해 오던 그뢰벨 포시가 GMT 시계를 선보인다. 트루비용이 아닌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제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그들의 필살기인 트루비용도 포함하고 있다.

IWC를 거쳐 르노 이 파피(Renaud & Papi)에서 하이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를 담당하고 있던 로베르트 그뢰벨이 그의 팀원이었던 스테판 포시와 함께 2004년 설립한 브랜드가 바로 그뢰벨 포시다. 2006년 리치몬트 그룹이 지분 20%를 인수하면서 발은 걸치고 있지만 여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시계 브랜드이다.

현재까지 그뢰벨 포시는 트루비용을 기반으로 작품을 선보여 왔다. 2004년에 더블 트루비용 30°을 시작으로 2005년에는 콰드루플 트루비용 2006년에는 트루비용 24 세컨즈 그리고 2007년에는 인벤션 피스 1을 제작하였다. 사실 제작이라기 보다는 발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이례적으로 트루비용 이외에 GMT 기능이 추가되었다. 더 이상 트루비용의 혁신을 이룰것이 없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기능과의 조우를 시도한 것으로 생각된다. GMT는 간단하게 복수의 시간을 표시 해주는 기능으로 다른 타임존의 시간을 함께 구현하는 기능을 의미한다. 이번 작품은 GMT 디스플레이 이외에도 24세컨드 트루비용이 적용되었으며 지구의 자전하면서 시간을 표현해주어 시각적인 화려함까지 선사하고 있다. 또한 섬머타임 인디케이터와 데이-나이트 인디케이터까지 구현되어 GMT에 포함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GMT의 끝.

이번 작품은 2012 SIHH에서 공식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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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HH 2012] 그뢰벨 포시 G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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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vs ‘불후의 명곡2’ 애매한 출연자를 정해드립니다.

 

‘나는 가수다’ vs ‘불후의 명곡2’ 애매한 출연자를 정해드립니다.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이하 ‘나는 가수다’)와 KBS <자유선언 토요일> ‘불후의
명곡2’(이하 ‘불후의 명곡2’)는 ‘본격 가수 재조명’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경쟁의 압박감 속에 매 경연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출연만 하면 음원성적 혹은 검색어 순위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차이점이 있다면 두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는 가수의 경계가 뚜렷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그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오랜 연륜으로 음악적 완성도를 갖춘 가수들이 출연하던
‘나는 가수다’는 출연 가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고, 주로 아이돌 가수가 출연하던 ‘불후의 명곡2’에는 어느 정도 연륜이 있거나 가창력을 우선시
하는 가수들이 출연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느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적당한지 애매하다. <10 아시아>가 8명의 가수를 임의로
선정해 정리 해봤다. 애정남의 주요 멘트를 마음 깊이 새기며 애매한 가수들의 위치를 정해보자. “똑같이 따라 안 한다고 쇠고랑 안 찹니다잉!
경찰 출동 안 해요~잉!”




‘나는 가수다’의 남성 로커 라인에 자신감을
끼얹어 줄 K2 김성면

K2 김성면은 임재범과 함께 ‘노래방 애창곡 끝판왕’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소싯적
‘잃어버린 너’,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녀의 연인에게’를 한 번 쯤 노래방에서 불러봤던 수많은 남자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임재범을
잇는 90년대 록발라드 라인으로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재조명 받을 만하다. 진성이 아닌 반 가성으로 시원하게 고음을 뽑아내는 그의 보컬은
성대 대결에서도 다른 가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추억과 감성, 고음 삼박자를 고루 갖춘 K2 김성면은 지금의 ‘나는 가수다’에 최적화되어 있다.

관전포인트: ‘피부가 여자처럼 섬세한’ 김경호는 화장품 냉장고로
40대 로커들의 여성화를 증명했다. 과연 K2 김성면은 김경호의 뒤를 이을 수 있을까.

‘불후의 명곡2’에 노련함을 끼얹을 여성 로커
서문탁

이른바 ‘성대 대결’이 가능한 여성 로커이기에 ‘나는 가수다’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로커는 이미
포화상태다. 활동한지 오래되었을 뿐 홍경민보다도 나이가 어린 서문탁에게는 노련하면서도 ‘젊은 피’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는 ‘불후의 명곡2’가
앞으로의 활동에 더 유리하다. 그는 ‘불후의 명곡 2’에서 성대를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화려함이 있는 반전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
‘각인’,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에서 내지르는 보컬로 유명하지만, 뮤지컬 <헤드윅> 등이나 스페셜 무대에서 보여줬던 숨겨왔던 댄스 열정을 불태우며 팔색조로 변신을 꾀할 기회다.
관전포인트: 김구라의 독설과 신동엽의 애드리브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잘
맞받아친다면 ‘예능의 희망’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나는 가수다’의 진지함에 유쾌함을 끼얹을
임창정

12장의 앨범 발표, 총 500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갖고 있는 가수라는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임창정의
목소리가 주는 소주향기다. 그의 목소리에 배인 진한 소주 향기가 청중평가단의 표를 이끌 것이다. 그리고 임창정은 ‘나는 가수다’의 고음 대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기다리는 이유’, ‘Love Affair’, '결혼해줘’ 등을 완창해 본 남자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
거기에 유쾌함은 옵션이다. ‘늑대와의 춤을’에서 보여줬던 댄스를 기억하는가. 발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던 발군의 댄스실력은 김범수
이후 또 한명의 비주얼 재간둥이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관전포인트: 자신이 유명 배우이자 가수인지 모르는 아들에게 존재를 각인시키고 싶어하는
임창정은 ‘딸 바보’ 임재범을 잇는 ‘아들 바보’로 등극할 수 있을까.

‘불후의 명곡2’에 화려한 퍼포먼스를 끼얹을
아이비

아이비는 이른바 ‘다 가진’ 여자가수였다. 퍼포먼스와 가창력, 그리고 발라드와 댄스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수인만큼 매 주 다른 장르, 다른 모습으로 관객을 기쁘게 할 수 있다. 특히 깜짝 놀라는 반전이나 퍼포먼스의 화려함에
높은 점수를 주는 ‘불후의 명곡2’의 관객에게 맞춤형 가수인 셈. 이후 ‘불후의 명곡 2’의 우등생 씨스타 효린과 대결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인기, 돈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저 평생 노래만 하며 사는 것이 꿈”이라는 아이비에게 매 회 탈락자가 없는 ‘불후의 명곡2’은 최적의
선택이다.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
관전포인트: “안녕하세요, 아이비입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처럼 박수칠 타이밍을 찾기
힘든 멘트만 조심한다면....



‘나는 가수다’에 보는
재미를 끼얹을 울랄라 세션

Mnet <슈퍼스타 K 3>에서 경연 팀이 아니라 ‘초대가수’로 불리는
울랄라 세션은 춤과 노래, 무대연출까지 안되는 게 없는 팀이다. 특히 ‘미인’과 ‘Swing Baby’에서 보여준 한 편의 뮤지컬 같은 무대,
지상렬이 G.C 해머의 이름으로 부른 ‘클럽 아리랑’도 소화해내는 능력은 ‘나는 가수다’에 보는 즐거움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또한 ‘나는
가수다’는 수십 년 동안 노래를 한 가수들도 손을 떨 정도로 긴장되는 무대지만 다른 팀과 경쟁한다는 생각이나 욕심을 뺀 울랄라세션은 그저
즐긴다. 이른바 ‘멘탈 甲’인 울랄라 세션의 긍정 에너지는 관객 모두를 일어나게 만들 것이다.
관전포인트: ‘나는 가수다’가 ‘나만 퍼포먼스 가수다’ 혹은 ‘울랄라 세션 디너쇼’로
바뀔 수도 있다.

‘불후의 명곡 2’에 편곡 능력을 끼얹을 톡식
KBS
<톱밴드>의 우승자 톡식은 아이돌 가수에 뒤지지 않는 비주얼, 그리고 그들이 그리는 아이라인보다 더 진한 음악 색깔로 주목받은
팀이다. 특히 톡식은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나 어떡해’ 등을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 줄 안다. 전설의 노래를 다시 부르는 ‘불후의
명곡2’에 편곡 열풍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편곡과 연주 실력은 출연하는 전설의 가수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있다. 그리고
톡식은 대진운 같은 것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톱밴드> 16강전에서 사실상 결승전으로 불렸던 브로큰 발렌타인과 경연을
치르고 8강에 진출했다. 신동엽의 순서 뽑기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하나의 팀이다.
관전포인트: 두 개 이상의 악기를 다루는 톡식이 드럼, 기타, 색소폰, 하모니카,
키보드 등을 다루는 홍경민을 만나 경합을 벌인다면?


‘나는 가수다’에 무대 연기를 끼얹을
최성희(바다)

S.E.S의 바다로 친근한 최성희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감정을 연기하고 노래한 거예요.
가수라는 직업을 연기한 거죠”라고 말한 바 있다. 연기를 하듯 노래하는 최성희는 ‘나는 가수다’에서 박정현처럼 기승전결이 살아 있는 뮤지컬
무대로 청중평가단을 감동시킬 수 있다. 뮤지컬 무대에서 선보였던 극적인 감정 표현력을 활용해 드라마틱한 무대를 꾸밀 수 있다. 또한 KBS
<열린 음악회> 등에 꾸준히 출연하며 다양한 연령층과 함께 즐기는 법을 익힌 그는 50~60대 관객층과도 교감하는 모습으로 좋은
점수를 얻을 것이다.
관전포인트: 바다가 ‘I'm so mad~’를
부르며 손가락을 돌리는 순간 모든 관객이 바다와 함께 손가락을 돌리는 ‘Mad’ 효과는 유효할 것인가.

‘불후의 명곡 2’에 치열한 경쟁을 끼얹을
김준수

김준수는 호소력 짙은 고음으로 극적인 감정표현을 하는데 능하다. 그가 만드는 고음 임팩트는 긴 여운을
남기며, ‘불후의 명곡2’의 승자 연승제 방식에서 경쟁을 보다 치열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것이다. 김준수는 KBS <해피선데이>
‘불후의 명곡’에서 ‘사랑은 생명의 꽃’을 불러 패티김의 총애를 받은 전례도 있지 않은가. 또한 댄스와 발라드, 록 등 다양한 장르가 가능한
그와 변신한 모습에 크게 반응하는 ‘불후의 명곡2’의 관객 특징은 잘 맞아 떨어진다. 여기서 김준수란, “가처분 소송의 결과와 상관없이 소송중인 연예인의 출연을 보류하는” JYJ의 김준수가 아니라 뮤지컬 배우
김준수를 말한다.
관전포인트: 전설의 가수의 노래를 편곡 할 때
무궁무진한 창의력을 자극하는 영어 약자가 포함된 가사를 넣는 일만 주의한다면.

 

 



‘나는 가수다’ vs ‘불후의 명곡2’ 애매한 출연자를 정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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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3일 목요일

[SIHH 2012] 지라드-페고 1966 스몰세컨즈

 

[SIHH 2012] 지라드-페고 1966 스몰세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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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드 페고는 내년 SIHH 2012에 선보일 1966 스몰 세컨즈 모델을 공개하였다. 올해는 브랜드가 탄생한지 220주년이 되는 해로 더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초 공개되었던 1966 스몰 세컨즈 모델과 거의 동일하지만 스콜 세컨즈의 서브 다이얼이 6시에서 9시 방향으로 옮겨 갔고3시 부근에 데이트가 추가되었다. 6시 방향에는 창립220주년을 기념해 “Maison fondée en 1791(1791년 창립)”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100개 한정 생산 제품. 

 

 



[SIHH 2012] 지라드-페고 1966 스몰세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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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명품시계 - watch - 그가치 재발견.

 명품시계 - watch - 그가치 재발견.

 

"도대체 시계가 왜 그렇게 비싼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이유가 뭔가요?" 사람들과 시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떤 시계를 좋아하죠?` `시계를 많이 가지고 있나요?` `제겐 무슨 시계가 잘 어울릴까요?` 등의 질문을 받지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바로 `시계가 비싸다` `비싼 시계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휴대폰이나 단돈 몇천 원짜리의 전자시계에 비한다면 이른바 `가성비`가 현저히 낮은 고가의 시계들이 어떻게 로망처럼 되어버린 것일까. 

객관적인 정보부터 살펴보자. 스위스시계산업협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스위스 시계 수출국 중에 아시아의 비중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리스나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로존의 재정위기 속에 지난 2~3년간 신흥시장은 세 자릿수 성장률을 보이면서 스위스 시계 산업계의 고마운 존재로 떠올랐다. 

가장 최근 조사 결과인 2011년 8월 한 달 수출 통계 사례를 보면 근간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홍콩의 경우 2009년 1억3150만 스위스프랑(한화 1681억여 원) 정도 수출 규모에서 2010년에는 2억2910만 스위스프랑(한화 2928억여 원), 2011년에는 2억7110만 스위스프랑(한화 3565억여 원)으로 점점 늘어나서 2009년 대비 106.1% 성장세를 보였다. 

파텍 필립 ‘30b’

중국, 싱가포르, 일본에 이어 11위의 수출국이 된 한국도 홍콩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 성장폭을 보면 아주 높은 수준이다. 같은 8월의 결과를 보면 2009년 1270만 스위스프랑(한화 162억여 원) 정도 규모에서 2010년 1870만 스위스프랑(한화 239억여 원), 2011년 3340만 스위스프랑(한화 426억여 원)으로 껑충 뛰어올라 2009년 대비 162.5% 성장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이쯤 되니 한국에 들어오는 시계 브랜드와 시계들이 점차 늘어났고 백화점이나 로드숍 등 부티크의 확장, 신문과 잡지에서의 마케팅도 여느 때보다 활발하다. 

그 옛날 루이비통, 샤넬, 구찌 등 패션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진출할 때처럼 시계시장의 확장은 이미 주위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가장 큰 변화는 예물이 아닌 다른 이유로 시계를 구입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증권회사 부장인 지인은 상사가 새로 부임하면서 "좋은 시계를 하나 갖추는 게 비즈니스를 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전문 시계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했다. 

전혀 시계에 관심없을 것 같던 한 여성 디자이너도 남성 시계 하나를 구입하고 싶은데 어떤 것이 좋은지 조언을 구했다. 보통 시계, 특히 기계식 시계 하면 남성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파네라이, IWC, 브라이틀링처럼 여성 시계 컬렉션을 따로 두지 않는 브랜드까지도 여성들의 문의와 구입이 증가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결혼 예물을 넘어 일상생활을 위해서 혹은 취미를 위해서 하나둘씩 시계를 더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구입 이유나 방법은 다양하다. 초창기에는 몇십만 원짜리부터 시작해서 점차 몇백만, 몇천만 원짜리도 불사한다. 

시계 리뷰, 시계를 구입한 `득템기` 등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올리는 글을 볼 수 있는 온라인 시계 커뮤니티인 타임포럼에서도 가끔 등장하는 화두는 알면 알수록 가격에 둔감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먹을 것 먹지 않고 입을 것 입지 않고 시계를 구입하는 사람, 심지어 시계를 구입하기 위한 적금을 든다는 사람도 있다. 금전적인 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혼자의 경우 부인 몰래 구입하거나 부인이 원하는 것을 구입해주고 또는 시계를 함께 착용하기 위해 되도록 남녀공용을 구입하는 경우 등 구입 형태는 다양하다. 이렇게 시계에 대한 저변이 확대되니 점차 고가, 고기능의 시계들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 그렇지만 시계의 가치보다는 가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성능이 좋은 차와 오랫동안 숙성기간을 거친 와인이나 위스키가 비싼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시계가 비싼 것에는 `이해 불가능`이란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 많다. 플래티넘과 골드 소재에 큼지막한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가 박힌 주얼리처럼 소위 `값어치` 높은 보석 하나 박혀 있지 않고 그야말로 금속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도구인 시계가 어마어마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내 자식에게 친구를 소개하듯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것 

"제게 시간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제가 밥을 주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가지 않는 기계식 시계는 아날로그적 동반자 저와 함께 호흡하는 존재죠"
시계 제조의 역사는 기술적인 발전ㆍ혁신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삶의 방식 안에서 시간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보물’ 전이 열린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전경.

가까운 예를 지난 9월 23일 열린 온니워치 경매에서도 볼 수 있다. 온니워치는 2001년 전신의 근육이 약해지는 유전성 난치병인 듀켄씨근이영양증에 걸린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모나코에서 발족한 협회(AMMㆍAssociation Monegasque contre les Myopathies, Monaco Association against DMD)에서 주최하는 시계 경매다. 

2005년부터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경매에는 시계 브랜드들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시계를 내놓고 있는데 올해 40개 브랜드가 참여했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시계라 더 주목받은 건 사실이지만 경매 결과를 보면 추정가 이하에 판매된 것도 상당하다. 

그러나 이변은 `파텍 필립` 브랜드에서 내놓은 Ref.3939에 있었다. 이 시계는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와 중력에 의한 시간 오차를 줄여주는 투르비용을 동시에 장착한 기능으로 상당히 복잡한 시계군에 속한다. 그래서 추정가도 45만~60만유로(약 7억~9억5000만원)로 높았다. 

그러나 경매 결과는 추정가의 배가 넘는 140억유로(약 22조원)가 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고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계 케이스가 스테인리스스틸 소재라는 사실이 그 결과를 더욱 놀랍게 만든다. 사실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시계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경매업계의 블루칩인 파텍 필립의 컴플리케이션 시계 중에는 스테인리스스틸 소재가 드물기 때문에 그 가치는 더 높아진 예를 과거 경매 결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시계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졌던 가치에 대한 개념을 뒤엎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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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운전자를 위한 '4억짜리 페라리 시계' 출시

 

 

 

페라리 운전자를 위한 '4억짜리 페라리 시계' 출시

 

 

 

 

 

 

 

 

페라리 자동차와 비슷한 가격의 '페라리 시계'가 나왔다.

페라리와 명품 시계 전문 업체인 '까베스탕'이 손을 잡고 선보인 이 최고급 손목 시계의 명칭은 '스쿠데리아 원'으로, 페라리 소유자를 위해서만 제작될 예정이라고.

"시계 안에 페라리의 DNA가 있다"고 제조 업체는 강조하고 있는데, 페라리 F1 경주용 자동차와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 업체 측의 설명이다.

60대 한정 제작될 예정인 '스쿠데리아 원 페라리 손목 시계'의 판매 가격은 30만 유로(약 4억3,000만원)며, 시간을 보는 방식은 일반 손목시계와는 전혀 다른 구조다.

 

페라리 운전자를 위한 '4억짜리 페라리 시계'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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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0일 목요일

the classic Touch

the classic Touch

 

(가운데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까르띠에 발롱블루 11 다이아몬드 프랑스어로 ‘파란 공’을 뜻하는 발롱 블루(Ballon Bleu). 우주가 탄생하던 때부터 시작된 공간의 팽창과 시간의 연속을 상징하는 까르띠에의 클래식 워치다. 조약돌처럼 부드러운 라운드형 케이스와 입체적인 디자인의 블루 크라운이 고급스럽다. 다이아몬드 세팅과 골드의 사용 방법에 따른 다양한 버전으로 선보인다. 사진 속의 제품은 인덱스에 다이아몬드 11개가 세팅된 버전이다. 9백만원대. 문의 02-518-0748

보메 메르시에 클래시마 오토매틱 점핑 아워 보메 메르시에의 가장 클래식한 모델인 클래시마의 2011년 버전. 점핑 아워 기능을 탑재해 독특한 다이얼 구성을 보여준다. 상단에 마치 날짜판처럼 보이는 것이 시간을 표시하고, 가장 큰 원이 분, 하단의 작은 원형이 초를 표시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심플하지만 고난도의 기술력이 적용되어 있다. 5백 개 한정 제품이다. 7백만원대. 문의 02-3438-6195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1952년 처음 출시된 오메가의 대표적인 라인. 3시와 9시 방향에 있는 클러(claw)라 불리는 갈고리 모양 장식이 상징적이다. 2009년 전 라인이 리뉴얼되었으며 새로운 컨스텔레이션 워치에는 오메가를 대표하는 코-엑시얼 무브먼트를 탑재했다. 디자인은 변함이 없지만 소재와 다이아몬드 세팅, 다이얼의 종류를 달리하며 매년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1천6백만원대. 문의 02-511-85197

피아제 알티 플라노 심플함의 대명사인 알티플라노 컬렉션은 순수함과 절제미의 조화로 명성을 얻은 피아제를 대표하는 워치다. 2011년에 새롭게 선보이는 여성용 알티 플라노 워치는 케이스 사이즈가 34mm로 지금까지 디자인보다 다소 작아졌다. 울트라 신 메캐니컬 핸드 와인딩 무브먼트 450P가 장착되었다. 다이아몬드를 섬세하게 세팅한 버전으로 화이트 앨리게이터 스트랩을 매치했다. 3천2백만원대. 문의 02-540-2297

샤넬 J12 샤넬의 워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대표적인 모델. 사진 속의 클래식한 버전 이외에 러버 스트랩을 매치한 머린 버전, 티타늄 세라믹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활용한 크로매틱까지 다양한 버전으로 선보이고 있다. 큰 형태는 변화를 주지 않고 소재와 콘셉트를 바꾸는 방식으로 접근해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완성했다. 7백16만원. 문의 02-3442-0962

불가리 불가리 워치 불가리의 베스트셀러이자 영원한 클래식 워치인 불가리 불가리. 본래는 심플한 디자인이지만 올해 새롭게 선보인 디자인은 케이스와 다이얼 모두 입체적으로 완성했다. 부드럽게 휜 핑크 골드 케이스는 착용감이 편안하다. 케이스는 42mm로 사이즈가 비교적 큰 편이다. 2천2백만원대. 문의 02-2056-0171

블랑팡 빌레레 컬렉션 블랑팡의 기술력과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모두 담고 있는 빌레레 컬렉션. 단정하고 클래식한 디자인에 문페이즈 기능을 탑재해 새로운 버전으로 선보인다. 티타늄 소재의 무브먼트와 로즈 골드, 브라운 앨리게이터 스트랩까지 가장 클래식한 소재만을 사용했다. 백 케이스의 뚜껑이 열리는 디자인으로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3천만원대. 문의 02-2118-6152

반클리프 아펠 PA49 반클리프 아펠의 2세대를 이끈 피에르 아펠이 1949년 자신이 착용하기 위해 디자인했다가 정식 컬렉션으로 론칭하게 된 클래식 워치. 극도로 심플한 디자인으로 다이아몬드 세팅, 다이얼의 소재에 따라 변화를 준다. 베젤의 폭을 최소화해 시각적인 가벼움과 여백의 미를 강조했고, 케이스와 스트랩을 고정하는 T자형 러그는 시계 본연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다이아몬드를 파베 세팅한 버전으로 5천만원대. 문의 02-3479-6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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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네질도 제냐 몬테루벨로 제냐 워치 컬렉션

 에르메네질도 제냐 몬테루벨로 제냐 워치 컬렉션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특별한 마스터 피스인 ‘몬테루벨로 제냐 워치 컬렉션’을 출시한다. 이는 미켈란젤로 제냐가 사용하던 19세기 포켓 시계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것으로, 지라드 페르고와 협업해 현대적인 우아함, 클래식한 제냐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몬테루벨로 제냐 워치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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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니, 맞춤 수트 프로모션 진행

 아르마니, 맞춤 수트 프로모션 진행

 

 


[오가을 인턴기자] 남성 브랜드 아르마니
꼴레지오니와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맞춤 수트 프로모션 진행 소식에 화제가 되고 있다.

디자이너 아르마니의 디자인 철학은 과장된 기교
없이 정수만 압축시킨 단순함과 우아함이다. 모던함과 화려함이 조화를 이루어 절제된 재킷으로 기술과 예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르마니는 그의 옷을 입는 사람들이 패션빅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옷을 통해서 세련되어 보이도록 하는 것을 추구한다.
평소에 아르마니의 철학이 담긴 수트를 쇼핑리스트에 올려두었거나 그의 팬이라면 이번 프로모션에 관심을 둬보자.


하나의 명품 수트, 아르마니 꼴레지오니 프로모션




아르마니 꼴레지오니가
10월12일부터 16일까지 맞춤 수트 프로모션 엠투엠을 진행한다.

엠투엠(Made to Measure Promotion) 라인은
몸에 잘 감기는 편안함과 동시에 멋스러움을 추구하는 고객을 위해 제작된다. 아르마니 꼴레지오니 기성복에 테일러만의 섬세한 손길이 담긴 재단을
더해 개인 고객에게 맞추어 제작하는 방식이다.

이번 아르마니 꼴레지오니의 엠투엠 컬렉션은 3가지 라인으로 구성됐다. 어깨 부분이
세심하게 재단된 이그제큐티브, 모던하고 피트되는 도시적인 느낌의 사토리얼, 자연스럽고 편안한 어깨라인이 특징인 조르지오 라인이다.


재킷은 총 32가지 스타일로 사이즈를 전개하고 있으며 울 실크, 캐시미어 등 150여 종의 소재를 사용해 폭넓은 선택이 가능하다.


또한 매장내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진행되어 피팅 과정을 볼 수 있으며 개인 선호하는 사항을 요청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제공된다.
약 60일 뒤에는 엠투엠으로 맞춰진 자신만의 옷을 만나 볼 수 있다. 

 

 

 

 아르마니, 맞춤 수트 프로모션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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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9일 수요일

[SIHH 2012] 파네라이 루미노르 마리나 1950 3 데이즈

 

[SIHH 2012] 파네라이 루미노르 마리나 1950 3 데이즈

 

 

2012 SIHH가 내년 1월 열린다. 그리고 브랜드들은 보도 자료를 통해 출품될 작품을 일부 공개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공개된 작품은 바로 파네라이의 작품이다.

파네라이 루미노르 마리나 1950 3 데이즈(Panerai Luminor Marina 1950 3 Days).

panerai-pam-422.jpgpanera-pam-422-luminor-marina.jpgpanerai-pam-422-back.jpg

PAM 422의 번호를 부여 받은 이 작품은 라미도르에서 루미도르 케이스로 넘어가던 1940년대 모델을 그 모태로 하고 있다. 47mm의 스틸케이스로 제작이 되며 다이얼은 샌드위치 다이얼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이얼 위에 인덱스를 새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샌드위치 다이얼의 경우 인덱스가 파여 있고 뒤에 레이어가 하나가 더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또한 가죽 스트랩 또한 어떠한 처리도 하지 않은 천연 가죽 그 자체를 사용하여 파네라이만의 투박하고 남성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2000개 한정 생산.


 
 
[SIHH 2012] 파네라이 루미노르 마리나 1950 3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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